감정의 지층
여러 시간속에서 많은 생각이 들고 감정이 생기는 것들은 단순히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이 발현되었던 그 순간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면 그 당시의 날씨, 냄새, 소리 혹은 들려왔던 음악, 맛 등등이 묻어있고 심지어 그 당시의 생각또한 엿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점차 쌓여가며 세월을 만들고 그 세월들이 나를 만들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커다란 돌이 나의 기반이 되며 이를 한번씩 잘라 그 단면을 보면 그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떠오르게 된다. 나는 그것을 감정의 나이테, 감정의 지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층을 되짚어 볼 때
사람마다 자신의 지층을 되짚어 볼 때 느끼는 감정이 다를것이다. 아마도
그 예로 나는 되짚어 볼 때 항상 아련함이 가장 많이 남는다. 뭔가 항상 아쉬움과 그리움이 즐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때 당시의 내 감정과 상황을 음미하다보면 씁슬함과 아련한 맛들이 느껴진다. 아마 여러 상상을 많이 하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별 다른 생각은 아니지만 항상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순간순간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서 미래가 나누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좀더 나아가면 다중우주론 처럼 생각해볼 수 있겠다.
비단 그것이 단순한 나의 사고회로속의 엉켜있는 생각선들의 덩어리일지라도 이 덩어리는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때 만약 그랬다면? 그렇게 반응했더라면? 그렇게 행동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는 이 시간의 나는 달랐을 것 이라고.
다양한 세계선
인간은 매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하며 매 순간순간의 판단에 의한 행동들 사이에서 미래가 달라진다. 매일 가던 출근길도 어느 날은 1분 일찍 출발한다면 지하철을 평소에 타던 차보다 앞차를 탈 수도 있는 것이다.
1분 일찍인데 왜?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멀리 이동하며 환승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잘 알지도 모른다. 정말 실제 예로 나는 5분 일찍 집을 나선다면 평소에 타던 지하철의 앞차를 타게 되고 이 영향은 조금만 타이밍이 맞다면 환승한 차도 그 앞차를 타게 되고 또 다음 환승에서도 앞차를 타게 되어서 결과론적으로 회사에 10분 일찍 도착하게 된다.
반대로 5분 늦게 나왔다고 하면 그 뒷차를 타게 되며 환승 할 때마다 점점 뒷차 뒷차로 밀려나 결국에는 10분 수준이 아니라 20분, 30분을 지각할 수도 있는 세계선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나비효과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나의 작고 아주 사소한 선택 하나가 먼 미래의 결과를 바꿔놓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렇듯 인생은 매 순간순간의 생각, 행동, 선택들이 먼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재밌는 상상을 해 보자면 전날 일찍 잠에 들어 푹 자고 일찍 개운하게 눈이 떠서 출근길을 평소보다 빠르게 나오게 된다. 이 것을 시작으로 회사에 일찍 도착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여유로운 출근길이 되어서 하늘도 보고 지나가는 길에서 나무에서 떨어져 바삭바삭해져버린 낙엽도 한번 밟아본다. 그러다 혼자 너무 바삭바삭한 느낌이 재밌고 소리도 재밌다는 생각에 영상을 찍어서 릴스에 올려본다. 그 한번 릴스에 올렸던 영상이 어느새 알고리즘을 타더니 순식간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게 되었고 그 뒤로 너도나도 낙엽밟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다. 아주 잠깐인 시기이지만 그새 또 경쟁이 붙은 사람들끼리는 내 낙엽이 제일 바삭거린다라고 올리기도 하고 뇌절까지 이어져 낙엽을 아예 오븐에 구워서 새까맣게 탄 낙엽을 밟으며, "아 이게 제일 바삭바삭 거리는 낙엽이지~" 하기도 한다.
이렇듯 인생의 세계선들이란 이런 것 같다. 슈타인즈게이트에서 오카베의 선택들이 영향을 미쳐 여러 세계선들이 존재하고 또한 이를 수치로 나타낸 다이버전스 수치를 점점 높여가며 1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완전히 다른 세계선으로 이동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죽지않은 마키세를 찾기 위해, 결코 우리의 감정이 다시 마주치지 못할지라도 크리스티나가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
신지훈님의 음악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 를 정말 좋아한다. 그 곡의 분위기와 음색도 정말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내 가슴을 울린건 가사와 제목이다.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
길 잃은 맘을 위로하는 노래가 되고
그건 긴 어둠을 서성이던
청춘이 남기고 간 의미일거야그 시절의 좋은 추억, 슬픈 추억, 아픈 추억, 행복했던 추억들을 글로 써내려가며 한 장 한 장 꿰어 한 권의 산문집으로 마음속에 묻게 된다.
그리고 가끔씩 그 산문집을 열어 추억을 회상하다보면 그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에 공감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때의 감정과 그 감정들을 보는 나의 감정들이 느껴지게 된다. 그 감정들이 아마 대부분 아련하고 씁슬함이 대부분이라 나의 지층에서 아련함이 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그 당시에도 행복하다는 감정이 있었지만 그 뿐만이 아닌 그 뒷일을 예측하고 있는 반대편의 생각에 반응하는 씁슬함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무시할 수 있었지만 지금에서는 그 감정들이 많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 느꼈던 미래의 감정들 사이에 내가 있으니까
산문집들을 집필하다보면 언젠가는 아름다운 얘기도 행복함만이 가득한 얘기도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이상이 있다. 어찌 좋은 것만 있겠냐만은 아프고 힘든 일들이 있기에 잠시 올라온 잠깐잠깐의 좋은 감정의 봉우리들이 더욱 더 두드러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계속 힘들 테지. 앞으로도 매 순간순간이 쉽지 않은 길일 것이고 그 어렵고 계속 넘어지고 상처나고 때론 지쳐 쓰러져 잠시 쉬게 되고 그러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면 빛에 다다랐을 때 결코 그 빛이 빛이라고 느끼지 못할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