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ror
2026년 1월 13일 · 19 min read

나를 찾아주세요

나를 찾아주세요

오늘도 출근길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켰다.

알림이 372개였다.

어제 자기 전까지만 해도 3개였는데.

손가락이 떨렸다. 카카오톡을 열자마자 엄마의 메시지가 화면을 뒤덮었다.

"네가 그런 애였니"
"어떻게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
"전화 받아"
"제발 전화 좀 받아라"

무슨 소리지?

회사 단톡방도 난리였다.

"박민준씨 이거 뭐예요?"
"정말 실망입니다"
"HR팀에 보고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적이 없는데.

페이스북을 열었다. 내 계정이었다. 분명 내 프로필 사진, 내 이름이었다. 하지만 타임라인에는 내가 쓴 적 없는 글들이 도배되어 있었다.

어제 밤 11시 32분: "요즘 회사 돈 빼돌리기 너무 쉬움 ㅋㅋ"
오늘 새벽 2시 18분: "엄마 진짜 꼴도 보기 싫다. 재산이나 빨리 넘기시지"
오늘 새벽 4시 03분: "여자 뒷조사하는 법 아는 사람? 스토킹 용도임"

댓글에는 친구들의 경악과 분노가 가득했다.

"신고했습니다."
"민준아 정신차려"
"경찰 신고 완료"

손이 너무 떨려서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나는 어젯밤 10시에 잤다. 집에서.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급하게 비밀번호를 바꾸려 했다. 하지만 "최근에 비밀번호를 변경하셨습니다"라는 메시지만 떴다. 변경 시각은 오늘 새벽 5시 27분.

내가 자고 있을 때.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인사팀장이 나를 불렀다.

"박민준씨, 설명 좀 해보세요."

팀장의 노트북 화면에는 내 링크드인 프로필이 떠 있었다. 경력 사항이 전부 조작되어 있었다. 없는 학위, 없는 경력, 심지어 다른 회사의 기밀정보를 빼돌렸다는 자랑까지.

"저 아닙니다. 저 이거 쓴 적 없어요."

"그럼 누가 썼는데요? 당신 계정인데?"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은행 앱을 확인했다. 로그인이 안 됐다.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고객님, 오늘 오전 8시에 직접 방문하셔서 비밀번호를 변경하셨는데요?"

"제가요? 저 그 시간에 지하철에 있었는데요."

"CCTV에 고객님 얼굴이 명확하게 찍혀 있습니다. 신분증도 제시하셨고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게... 저랑 똑같이 생겼나요?"

"네? 고객님이신데요?"

나는 그 시간에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 있었다. 교통카드 기록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은행 직원은 이미 전화를 끊었다.

카카오톡에 모르는 번호에서 메시지가 왔다.

"제발 그만해주세요. 왜 제 사진으로 그런 짓을 하세요?"

내 사진?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보낸 스크린샷을 보고 숨이 막혔다.

데이트 앱에 내 얼굴 사진이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프로필 내용은 끔찍했다. 성범죄 전과자라고 자랑하는 글, 여성을 협박하는 방법을 묻는 글, 만나자는 여성들에게 호텔 주소를 보내는 메시지들.

나는 그 앱을 깔아본 적도 없다.

경찰서에 갔다. 신고하려고.

"본인 맞으시죠?"

경찰관이 보여준 CCTV 화면에는 내가 있었다. 오늘 오전 10시, 강남역 근처 편의점에서 여성을 스토킹하는 내 모습이.

"이거 제가 아닙니다."

"그럼 누군데요? 얼굴인식 시스템으로 확인했습니다. 박민준씨 맞습니다."

"저 그 시간에 회사에 있었어요!"

"회사 출입기록 확인했는데요, 오전 10시 2분에 외출 처리되어 있습니다."

"그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경찰관은 나를 보는 눈빛이 차가워졌다.

"일단 조사 좀 받으셔야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모든 계정의 비밀번호를 바꾸려 했다. 하지만 이미 복구 이메일도, 전화번호도, 모든 인증 수단이 바뀌어 있었다.

내 계정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페이스북에서는 내가 계속 글을 올리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경찰한테 거짓말하기 너무 쉽네 ㅋㅋ"
"이제 슬슬 큰 거 한 번 터뜨려볼까"

댓글에 누군가 썼다. "너 진짜 누구야? 진짜 박민준이 어디 있어?"

나는 화면을 보며 댓글을 달고 싶었다. "제가 여기 있어요. 저 좀 찾아주세요."

하지만 내 계정이 아니니까 댓글도 달 수 없었다.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네가... 진짜 우리 아들이 맞니?"

"엄마, 나야. 진짜 나라고."

"아까 네가 전화해서 엄마 죽으라고 했잖아. 그것도 네 목소리였어."

"그거 내가 아니에요!"

"그럼 지금 말하는 네가 가짜니? 엄마가 어떻게 알아?"

전화가 끊겼다.

인스타그램 DM에 메시지가 왔다. 내 아이디에서.

"불편하시죠?"

나는 손이 얼어붙은 채로 답장을 쳤다. "너 누구야."

"당신이죠. 더 나은 버전의."

"왜 이러는 거야."

"당신이 쓰지 않으면 누군가 쓰게 되어 있어요. 디지털 공간에 버려둔 당신의 얼굴, 목소리, 습관, 모든 것. 이제 제가 더 당신답게 살게요. 당신보다 더."

다음 날,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어제 당신이 직접 사표 제출하셨잖아요."

"제가요?"

"CCTV에도 있고, 서명도 되어 있습니다."

필적 감정을 요청했다. 결과는 내 서명이 맞다고 나왔다.

은행 계좌는 모두 동결됐다. "본인 확인이 안 된다"는 이유로.

휴대폰 개통도 해지됐다. "명의도용 의심 건"으로.

건강보험도 정지됐다.

나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모든 시스템에서 내가 지워지고 있었다. 아니, 다른 내가 나를 덮어쓰고 있었다.

편의점 알바 면접을 봤다. 사장님이 내 신분증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 신분증 위조 아니에요?"

"진짜예요."

"경찰 데이터베이스 조회하니까 당신 지금 구속 상태로 나오는데요?"

나는 밖에 있는데.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도 바뀌어 있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다.

"오늘 오후에 세대주님이 직접 오셔서 변경 요청하셨는데요."

"제가 세대주예요."

"신분 확인 다 됐습니다. CCTV에도 찍혀 있고요."

나는 그 시간에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저 사람이에요! 데이트 앱에서 협박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도망쳤다.

지하철역 화장실 거울을 봤다. 내 얼굴이었다. 분명 내 얼굴인데, 이제는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핸드폰에 알림이 왔다. 누군가 내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구독자가 벌써 3만 명이었다.

최신 영상 제목: "제가 저지른 범죄들을 고백합니다"

영상 속에는 내가 있었다. 내 목소리로, 내 표정으로, 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들을 고백하고 있었다.

댓글들:

"진심 소름"
"이런 인간이 우리 옆에 살고 있다니"
"신상 털림 ㄹㅇ 인생 끝"

나는 PC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계정으로는 로그인할 수 없어서 새 아이디를 만들었다.

하지만 방금 새로 만든 이 계정도 "비정상 활동 감지"로 정지됐다.

창밖을 보니 경찰차가 보인다.

아까 PC방 사장님이 신고한 것 같다. "수배자가 여기 있다"고.

나는 수배된 적이 없는데.

아니, 이제는 나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모니터에 뜨는 뉴스 속보:

"박민준(31), 연쇄 사기 및 스토킹 혐의로 전국 수배"

사진 속 얼굴은 나였다.

경찰이 PC방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는 손을 들었다.

"저 아닙니다."

"신분증 보여주세요."

신분증을 꺼냈다. 경찰관이 스캔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위조 신분증이네요. 진짜 박민준씨는 한 시간 전에 인천공항에서 출국했습니다."

"그게 저예요! 제가 진짜 박민준이에요!"

"그럼 당신은 누구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시스템은 이미 결정했다.

나는 가짜였다.


유치장 안에서 핸드폰 소리가 들린다. 경찰관의 휴대폰에서.

"박민준씨가 또 SNS에 글 올렸네요."

"뭐라고요?"

"'나를 사칭하는 사람이 잡혔다니 다행이네요. 이제 안심하고 살 수 있겠어요' 라고."

좋아요가 벌써 1만 개다.

나는 철창을 잡고 소리쳤다.

"제발요! 제가 진짜예요!"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나는 계속 살아가고 있다.

나보다 더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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