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나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잠시만요!"
아래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에서 한 사람이 뛰어오고 있었다. 거리는 한 5미터쯤.
나는 '닫기'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별일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 급한 아침이면 모르는 사람을 기다려줄 이유가 없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친절한 사람도 아니다. 그게 나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약간 피곤해 보였다. 어젯밤에 술을 좀 마셨다.
26층을 지나갔다.
25층.
24층.
23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누가 타는구나.' 생각하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었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형광등 불빛만 차갑게 깔려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닫기' 버튼을 눌렀다.
그때, 거울 속 내가 움직였다.
정확히는, 내가 움직이기 전에 거울 속 나가 먼저 움직였다.
거울 속의 나는 고개를 돌려 23층 복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직 버튼만 보고 있었는데.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아니, 착각이겠지.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였다.
22층.
21층.
20층에서 또 멈췄다.
문이 열렸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재빨리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나는 이미 복도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아직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뭐야..."
중얼거리며 '닫기' 버튼을 연타했다. 거울 속의 나도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거울 속 나의 손가락이 0.5초쯤 빨랐다.
문이 닫혔다.
19층.
18층.
17층에서 또 멈췄다.
이번엔 문이 열리기 전에 거울을 똑바로 쳐다봤다.
문이 열렸다.
거울 속의 나는 웃고 있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거울 속 나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 있었다. 마치 재미있는 것을 보는 사람처럼.
"아..."
신음이 새어 나왔다.
거울 속의 나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17층 복도를 바라봤다.
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복도에 누가 있는 건가. 거울 속 나에게만 보이는 누군가가.
아니면 거울 속 나는, 진짜 내가 아닌 건가.
문이 닫히려는 순간,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거울 속 나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16층.
15층.
나는 더 이상 거울을 보지 않기로 했다.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손이 떨렸다.
14층.
13층에서 멈췄다.
'제발 아무도 타지 마.'
문이 열렸다.
복도에 사람이 서 있었다.
27층에서 내가 문을 닫아버렸던 그 사람이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가방을 들고, 똑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잠시만요!"
똑같은 목소리로 말하며 뛰어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닫기'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혔다.
12층.
11층.
10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렸다. 또 그 사람이 서 있었다.
"잠시만요!"
9층에서도.
"잠시만요!"
8층에서도.
"잠시만요!"
7층, 6층, 5층.
매번 문이 열릴 때마다 그 사람이 서 있었다. 조금씩 더 가까이.
4층에서는 엘리베이터 문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구석으로 몸을 웅크렸다.
그 사람은 웃고 있었다. 거울 속 내가 짓던 바로 그 미소로.
문이 닫혔다.
3층.
2층.
1층.
문이 열렸다.
로비는 텅 비어 있었다. 관리실 불도 꺼져 있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뒤를 돌아봤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내가 서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닫기'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표시등을 봤다. 2층, 3층, 4층...
27층까지 올라간 뒤,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26층.
25층.
24층.
23층에서 멈췄다.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를 찔렀다.
회사에는 가지 못했다. 근처 카페에서 해가 뜰 때까지 앉아 있었다.
집에는 저녁때 돌아갔다. 계단으로.
27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뒤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
매일 계단으로 27층을 오르내린다.
하지만 어제, 계단 참에 있는 작은 거울에서 나를 봤다.
거울 속의 나는 이미 한 층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현관문을 나서는데 복도 끝에서 누군가 뛰어오고 있었다.
"잠시만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문을 잠그고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현관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규칙적으로.
멈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