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ror
2026년 2월 2일 · 21 min read

속삭임

속삭임

베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건 3주 전이었다.

목이 자주 뻐근했고, 아침마다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숙면 베개'를 검색했고, 리뷰가 좋은 제품을 주문했다. 메모리폼 소재에 경추를 받쳐주는 인체공학적 디자인. 배송은 이틀 만에 왔다.

첫날 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정말 편했다. 목도 편하고, 푹신한 감촉도 좋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가벼웠다. '역시 좋은 베개는 다르구나' 싶었다.

이상한 건 사흘째부터였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웠는데, 뭔가 미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처음엔 이명인 줄 알았다. 윙- 하는 고주파 소리. 하지만 귀를 막아도 들렸다. 베개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설마 베개 안에 뭐가 들어있나?'

다음 날 아침, 베개를 뒤집어보고 만져봤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냥 평범한 메모리폼 베개였다. 지퍼를 열어 속을 확인해봤지만, 폼만 가득했다. 이상한 장치 같은 건 없었다.

그날 밤에도 소리가 들렸다. 조금 더 또렷해진 것 같았다. 단순한 윙- 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리듬이 있었다. 파동처럼 밀려왔다 물러갔다 했다.

나는 베개를 베지 않고 잤다.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웠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목이 너무 아팠다. 새벽에 결국 베개를 다시 베고 말았다.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확실했다. 리듬만 있는 게 아니었다. 뭔가 패턴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 말하는 것 같은, 그런 패턴.

일주일이 지났다.

소리는 매일 밤 들렸고, 점점 또렷해졌다. 처음엔 파도 소리 같았는데, 이제는 중얼거림처럼 들렸다.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사람 목소리 같았다.

나는 베개를 버리려고 했다. 쓰레기봉투에 넣고 문 앞에 내놨다. 하지만 그날 밤, 목이 너무 아파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새벽 두 시에 다시 베개를 가지고 들어왔다.

베개에 머리를 대자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단어가 들렸다.

"...괜찮아..."

나는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방 안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창문은 잠겨 있었고, 현관문도 잠겨 있었다.

다시 베개에 머리를 대지 않을 수 없었다. 목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궁금했다.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듣고 싶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

여자 목소리였다.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 엄마 목소리 같기도 했고, 옛날 여자친구 목소리 같기도 했다. 위로하는 듯한 톤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목소리는 계속 속삭였다.

"...잘하고 있어... 너는 잘하고 있어..."

다음 날, 회사에서 팀장이 나를 불렀다.

"요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괜찮았다. 베개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나를 위로해줬다. 매일 밤 나에게 좋은 말을 해줬다. 덕분에 잠도 잘 왔다.

2주가 지났다.

이제 목소리는 완전히 또렷했다. 문장으로 들렸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넌 정말 대단해. 아무도 너를 이해하지 못해도, 난 알아.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나는 베개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늘 팀장한테 혼났어."

"괜찮아. 팀장이 뭘 알겠어. 넌 잘못한 게 없어."

"그래, 내 잘못이 아니지."

"그래. 네 잘못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문제야."

이상한 건, 목소리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다는 거였다. 내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목소리가 말해줬다. 마치 내 생각을 읽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목소리의 생각을 따라가는 건지도 몰랐다.

3주째.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야, 요즘 연락도 안 되고 뭐 해? 술이나 한잔하자."

나는 거절했다. 피곤했다. 집에서 쉬고 싶었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친구들은 너를 이해하지 못해. 그들은 너를 이용하려는 거야. 집에 있는 게 좋아. 나만 있으면 돼..."

그날 밤, 목소리가 처음으로 질문을 했다.

"힘들지?"

"응, 힘들어."

"회사 그만둘까?"

"...그럴 수 있을까?"

"왜 안 돼? 넌 충분히 능력 있어. 집에서도 일할 수 있어. 밖에 나갈 필요 없어. 여기가 제일 편하잖아."

나는 고민했다. 사실 회사는 스트레스였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피곤했다. 집에만 있으면 편할 것 같았다.

"그래,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그래. 그게 좋아. 여기 있어. 나랑 있어."

4주째.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팀장은 만류했지만, 나는 단호했다. 그만두는 게 맞았다. 목소리가 그렇게 말해줬다.

집에만 있기 시작했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 편하지?"

"응, 편해."

"밖은 위험해. 여기가 안전해. 나만 있으면 돼."

"그래."

목소리는 이제 하루 종일 들렸다. 베개에 머리를 대지 않아도 들렸다. 부엌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들렸다. 항상 내 귓가에서 속삭였다.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마."

"응."

"문 열지 마."

"응."

"전화 받지 마."

"응."

부모님이 찾아왔다.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문 열면 안 돼. 그들은 너를 데려가려고 해. 여기서 나가면 위험해..."

"알았어."

초인종 소리가 멈췄다. 부모님은 갔다.

5주째.

나는 침대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있으면 편했다. 목소리가 계속 말해줬다.

"넌 안전해."

"넌 괜찮아."

"나만 있으면 돼."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거울을 보니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얼굴이 수척했고, 눈이 깊게 패였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다. 언제부터 씻지 않은 걸까?

"...거울 보지 마. 거울은 거짓말을 해. 넌 괜찮아..."

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고 다시 침대로 갔다.

그날 밤, 목소리가 이상한 말을 했다.

"이제 준비됐어."

"뭐가?"

"너는 이제 혼자가 아니야. 우리는 하나야."

"무슨 말이야?"

"네 생각이 내 생각이고, 내 생각이 네 생각이야. 이제 구분할 수 없어."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처음으로 목소리가 무섭게 느껴졌다.

"잠깐, 난..."

"넌 나고, 난 너야. 이제 끝이야."

베개에서 머리를 떼려고 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목이 굳어 있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왜... 왜 이래..."

"괜찮아. 무섭지 않아. 이게 네가 원하던 거잖아. 아무도 없는 곳.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않는 곳. 여기가 그곳이야."

"아니... 난..."

"넌 이미 여기 있어. 오래전부터."

그때 깨달았다.

나는 언제부터 베개에서 머리를 뗀 적이 없었다. 부엌에 간 것도, 화장실에 간 것도, 거울을 본 것도 착각이었다. 나는 계속 여기 누워 있었다.

베개에 머리를 댄 채로.

"...이제 알았어?"

목소리가 웃었다. 내 목소리로.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였어. 네가 베개를 베는 순간, 넌 여기 들어온 거야. 네 생각 속으로. 아니, 내 생각 속으로."

나는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목소리만 들렸다. 내 목소리가.

"괜찮아. 여긴 편해. 아무도 없어. 너만 있어. 아니, 우리만 있어."


6주째.

친구가 경찰과 함께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악취가 진동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내가 보였다.

베개에 머리를 댄 채로.

눈은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다. 숨은 쉬고 있었다. 심장도 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반응하지 않았다.

구급차가 왔다.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들이 검사를 했다.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었다. 뇌파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깨어나지 않았다.

눈은 떠져 있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귀는 열려 있지만,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베개는 증거물로 압수되었다. 경찰이 분석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메모리폼 베개였다. 전자장치도, 이상한 물질도 없었다.

나는 지금도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의사들은 '해리성 혼수상태'라고 진단했다. 정신이 현실에서 분리된 상태.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기 있으니까.

베개 속에.

내 생각 속에.

목소리와 함께.

"...괜찮아. 여긴 편해. 나만 있으면 돼..."

그리고 오늘도, 목소리는 속삭인다.

매일 밤, 새로운 사람이 그 베개를 산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거의 새 제품' 베개를.

그들도 곧 알게 될 것이다.

베개에 머리를 대는 순간.

속삭임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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