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층과 13.5층 사이
엘리베이터가 멈췄을 때는 새벽 2시 47분이었다.
퇴근길이 늦어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야근에 지쳐 겨우 집에 도착해 로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순간,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버튼이 평소보다 뜨겁게 느껴졌다. 손가락 끝이 따끔했다.
엘리베이터는 덜컹거리며 올라갔다. 3층, 5층, 8층. 층수 표시등이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나는 13층에 산다. 그리 높지 않은 층수지만,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유난히 느리게 올라가는 것 같았다.
10층을 지날 때였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덜컹하고 흔들리더니 멈췄다. 층수 표시등은 10과 11 사이에서 깜빡이다 꺼졌다. 비상등도 켜지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아, 제발."
나는 비상벨을 눌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 불을 켰다. 엘리베이터 안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만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
그때 들렸다.
숨소리.
내 뒤에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나 혼자 탔으니까. 하지만 숨소리는 계속 들렸다. 규칙적이고, 느리고, 깊은 숨소리. 마치 누군가 내 귀 바로 옆에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휴대폰 화면이 깜빡이더니 꺼졌다.
다시 어둠.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층수 표시등이 다시 켜졌다. 11층. 12층. 13층.
문이 열렸다.
복도는 평소와 똑같았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복도 끝 비상구 표시등만 붉게 빛났다. 나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1304호. 내 집 문 앞에 섰을 때, 나는 멈칫했다.
문 앞에 발자국이 있었다.
젖은 발자국. 맨발의 흔적. 내 집 문 앞에서 멈춰 있었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현관에 불을 켰다. 아무것도 없었다. 발자국은 문 밖까지만 있었다. 안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현관문을 잠그고 체인까지 걸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었던 숨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새벽 3시 33분.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현관으로 다가가 초인종 화면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복도는 비어 있었다.
똑똑똑.
다시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내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화면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출근 시간에 늦어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멈칫했다.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계단으로 13층을 내려갈 수는 없었다. 나는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다. 문이 열렸다. 안은 비어 있었다.
나는 탔다.
1층 버튼을 누르자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12층, 11층, 10층.
9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문을 닫지 않았다. 나는 닫힘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그때 들렸다.
숨소리.
어젯밤과 똑같은 숨소리.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였다. 8층, 7층, 6층. 나는 층수 표시등만 바라봤다. 숨소리는 계속 들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5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층수 표시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5, 4, 5, 4, 5.
숨소리가 내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그리고 느껴졌다.
뜨거운 숨결이 내 목덜미를 스쳤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렸다. 5층 복도였다. 나는 뛰어내렸다. 계단으로 달려 내려갔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동료가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날 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기로 결심했다. 13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엘리베이터보다는 나았다.
1304호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다시 멈췄다.
발자국이 있었다.
어젯밤과 똑같은 젖은 발자국. 하지만 이번에는 더 많았다. 계단 쪽에서 시작해서 내 집 문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계단 쪽을 돌아봤다. 발자국은 계단에서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날 밤부터 이상한 일이 계속됐다.
매일 새벽 3시 33분이 되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초인종 화면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분명했다. 똑똑똑. 규칙적이고, 느리고, 끈질긴 소리.
나는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다. 야간 경비원이 올라와 복도를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CCTV를 확인해달라고 했더니 새벽 시간대 영상에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고 했다.
"혹시 위층에서 물 새는 소리 아닐까요?"
경비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매일 계단으로 오르내렸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계속됐다.
어느 날 퇴근길, 나는 10층에서 멈췄다. 숨이 너무 차서 잠시 쉬어가려고 했다. 계단참에 앉아 물을 마시는데, 위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천천히, 규칙적으로 내려오는 발소리.
나는 고개를 들었다. 계단 위쪽은 어두웠다. 형광등이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일어나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11층, 12층. 나는 뛰었다. 발소리도 빨라졌다.
13층 문을 열고 복도로 뛰어나왔다. 뒤를 돌아봤다. 계단 문이 천천히 닫히고 있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나는 봤다.
계단 어둠 속에 서 있는 형체를.
문이 닫혔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집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 잠갔다. 체인을 걸었다. 현관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관리사무소에서 온 문자였다.
"입주민 여러분께 공지드립니다. 최근 엘리베이터 이상 작동 신고가 접수되어 점검을 실시한 결과, 센서 오류로 인해 층간 정지 및 체온 감지 오작동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체온 감지?
나는 문자를 다시 읽었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체온 감지 센서가 있었나?
나는 인터넷으로 아파트 정보를 검색했다. 엘리베이터 사양을 찾았다. 체온 감지 센서는 없었다. 적외선 센서만 있었다. 문이 닫힐 때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기본적인 센서.
그렇다면 관리사무소 문자는 뭐지?
나는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다. 통화중이었다. 다시 걸었다. 계속 통화중이었다.
새벽 3시 33분.
똑똑똑.
나는 이제 놀라지 않았다. 매일 듣는 소리였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천장만 바라봤다.
똑똑똑.
소리가 계속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늘은 소리가 다르게 들렸다.
더 가까웠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현관이 아니었다. 소리는 내 방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똑똑똑.
내 방문을.
누군가 안에서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방문을 열지 않았다. 열 수 없었다. 나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문만 바라봤다. 소리는 한 시간 동안 계속됐다. 그리고 멈췄다.
아침이 되었다.
나는 회사에 병가를 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도, 계단도 무서웠다.
점심때쯤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였다. 나는 주문한 적이 없었다. 화면을 확인했다. 택배 기사가 서 있었다. 평범한 모습이었다.
나는 문을 열었다. 체인은 걸어둔 채로.
"1304호 맞으시죠?"
"네, 근데 저 주문 안 했는데요."
"여기 써 있는데요. 1304호 앞으로 왔습니다."
택배 기사가 내민 송장을 봤다. 분명히 내 주소였다. 하지만 보낸 사람 란이 비어 있었다.
"받을게요."
나는 체인을 풀고 문을 열었다. 택배를 받았다. 작은 상자였다. 무겁지 않았다.
"근데요."
택배 기사가 말했다.
"여기 엘리베이터 이상하지 않아요?"
"네?"
"아까 올라올 때 계속 멈추더라고요. 이상한 층에서요."
"이상한 층이요?"
"네. 12층 누르면 12.5층에서 멈추고, 10층 누르면 10.5층에서 멈추고. 숫자도 이상하게 나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택배 기사는 그냥 웃으며 갔다.
나는 상자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테이프를 뜯었다.
안에는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체온 기록지였다.
날짜와 시간, 그리고 체온이 적혀 있었다.
2월 3일 02:47 - 36.5°C - 13층
2월 3일 03:33 - 36.5°C - 13층
2월 4일 02:51 - 36.5°C - 9층
2월 4일 03:33 - 36.5°C - 13층
기록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탄 시간, 집에 있던 시간이 모두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줄.
2월 10일 03:33 - 36.5°C - 13층 1304호 안방
나는 종이를 떨어뜨렸다.
오늘이 2월 10일이었다.
그리고 어젯밤 3시 33분, 내 방문을 두드린 소리.
누군가 내 체온을 측정했다는 뜻이었다.
내 방 안에서.
나는 집을 나가기로 했다.
짐을 쌌다. 최소한의 옷과 노트북만 챙겼다. 친구 집에라도 가야 했다. 여기 있을 수 없었다.
현관문을 열었다.
복도에 발자국이 있었다.
젖은 발자국.
하지만 이번에는 방향이 달랐다.
내 집에서 나가는 발자국이었다.
나는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발자국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춰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있었다.
안은 비어 있었다.
층수 표시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13.5층.
그런 층은 없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계단으로 가려고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숨소리.
그리고 발소리.
누군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있었다.
나는 뛰었다. 계단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12층, 11층, 10층. 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왔다. 빨랐다. 점점 가까워졌다.
9층 계단참에서 넘어졌다. 무릎이 까졌다. 뒤를 돌아봤다.
계단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형체만 보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숨소리는 들렸다.
규칙적이고, 느리고, 깊은 숨소리.
나는 일어나 다시 뛰었다. 8층, 7층, 6층.
1층 로비에 도착했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파트 밖은 평범했다. 사람들이 오가고, 차들이 지나갔다.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친구 집으로 갔다.
친구는 놀라며 나를 받아줬다. 나는 며칠만 있겠다고 했다. 친구는 괜찮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친구 집 거실 소파에서 잤다.
새벽 3시 33분.
똑똑똑.
나는 눈을 떴다.
친구 집 현관문에서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친구가 일어나 문을 확인했다. 초인종 화면을 봤다.
"아무도 없는데?"
친구가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일주일 후,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원룸이었다. 2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첫날 밤은 조용했다.
둘째 날 밤도 괜찮았다.
셋째 날 밤.
새벽 3시 33분.
똑똑똑.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다.
이제 어디로 가도 소용없다는 것을.
매일 밤 3시 33분이면 그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문 틈 아래로 그림자가 보인다.
누군가 서 있다.
숨을 쉬고 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열어야 할 것 같다.
그림자가 점점 진해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어제부터는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라,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치 언제 열릴지 확인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