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 열쇠
교무실 열쇠를 받은 건 3월 둘째 주였다.
"시골 학교라 그래. 선생님이 열쇠 관리도 해야 돼."
교감 선생님이 낡은 열쇠 꾸러미를 건네며 웃었다. 스물여덟 살, 첫 발령. 전교생 마흔두 명의 시골 분교. 나는 6학년 담임이 되었다. 학생은 다섯 명이었다.
첫 주는 평범했다.
아이들은 조용했고, 수업은 순조로웠다. 방과 후면 교실을 정리하고, 칠판을 지우고, 창문을 닫았다. 교무실 문을 잠그고 집으로 돌아갔다. 30분 거리의 읍내 원룸까지.
이상한 건 월요일 아침부터였다.
"선생님, 주말에 학교 오셨어요?"
아이 하나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왜?"
"칠판에 오늘 날짜 적혀 있었어요."
교실 칠판 윗쪽, 항상 내가 날짜를 적는 자리. 거기에 '3월 18일 월요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분명 금요일에 칠판을 깨끗이 지웠는데.
필체를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내 글씨였다.
정확히는, 내가 평소 칠판에 날짜를 쓸 때의 필체. 약간 흘려 쓰는 '월'자, 동그랗게 맺는 '일'자 받침. 틀림없었다.
"당직 선생님이 쓰셨나 보다."
나는 대충 둘러댔다. 하지만 이 학교엔 주말 당직이 없다. 교감 선생님 혼자 돌아가며 점검할 뿐이다.
그날 저녁, 나는 교감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말에 누가 학교에 오나요?"
"아무도 안 와. 왜?"
"아, 아니에요."
교감 선생님은 잠깐 나를 보더니 말했다.
"6학년 교실 말이지. 거기 원래 그래."
"네?"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담임들이 다 그런 얘기 했어. 칠판에 뭐가 적혀 있다고. 근데 이상한 건 아니야. 그냥... 오래된 학교라서 그런 거지."
교감 선생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화요일 아침.
칠판에 또 적혀 있었다.
'3월 19일 화요일'
어제 분명히 지웠다. 창문도 잠갔다. 교무실 열쇠로 문도 잠갔다. 그런데 또.
이번엔 아이들도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선생님, 누가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 학교에 아무도 없었는걸."
하지만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혹시 내가 쓰고 잊은 걸까? 피곤해서 무의식중에?
그날 밤, 나는 일부러 칠판 사진을 찍었다. 깨끗이 지운 칠판. 타임스탬프까지 찍혔다. 오후 5시 42분.
수요일 아침.
'3월 20일 수요일'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어제 칠판은 분명 비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칠판의 글씨를 자세히 봤다. '수'자의 삐침, '요'자의 동그라미. 내가 쓸 때와 완전히 똑같았다.
누군가 내 필체를 흉내 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밤중에 학교에 와서 쓰고 있는 걸까?
그날 오후, 나는 교무실에서 오래된 서류를 뒤졌다. 10년 전 6학년 담임 기록. 5년 전 담임 기록.
거기서 찾았다.
"칠판에 계속 날짜가 적혀 있음. 원인 불명."
"학생들이 불안해함. 교실 이전 요청."
"CCTV 설치 요청했으나 예산 부족."
마지막 기록은 15년 전이었다.
"6학년 담임교사 김유진, 3월 23일 실종."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김유진. 15년 전 이 학교 선생님. 실종. 그리고 칠판에 적히는 날짜.
다음 날 아침, 나는 일부러 일찍 학교에 갔다.
칠판엔 아무것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누군가 장난을 친 거였다. 이제 그만둔 거겠지.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기요."
아이가 가리킨 곳은 교실 뒤쪽 게시판이었다.
거기에 붙어 있었다.
'3월 21일 목요일'
내 필체로.
포스트잇에.
나는 그 포스트잇을 떼어냈다. 손이 떨렸다. 이건 누가 봐도 내 글씨였다. 평소 내가 쓰는 메모 스타일 그대로.
"선생님, 무서워요."
한 아이가 울먹였다.
"괜찮아. 선생님이 알아볼게."
하지만 나도 무서웠다.
그날 오후, 나는 교감 선생님을 찾아갔다.
"김유진 선생님 얘기 좀 들려주세요."
교감 선생님은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분도 젊었어. 너처럼. 첫 발령이었지. 열심히 했어. 근데 3월 말쯤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대. 자기가 밤에 학교에 온 것 같다고. 기억은 안 나는데 흔적이 있다고. 칠판에 날짜가 적혀 있고, 자기 책상이 정리되어 있고."
"그래서요?"
"3월 23일 밤, 학교에 온 거야. CCTV도 없던 시절이라 정확히는 모르지. 다음 날 아침, 6학년 교실 칠판에 날짜가 적혀 있었대. '3월 24일'이라고. 근데 김유진 선생님은 안 오셨어. 그날도, 그다음 날도."
"실종된 거예요?"
"수색했지. 못 찾았어. 그 뒤로 6학년 교실은... 그래."
나는 교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손이 떨렸다. 열쇠 꾸러미가 눈에 들어왔다. 6학년 교실 열쇠. 교무실 열쇠.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꿨다.
내가 학교에 가는 꿈. 어두운 복도. 6학년 교실 문을 여는 나. 칠판 앞에 서서 분필을 드는 나. 날짜를 적는 나.
하지만 꿈속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내 손이 아니었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금요일 아침.
'3월 22일 금요일'
이번엔 교탁 위 출석부에 적혀 있었다.
내 필체로.
출석부 여백에 날짜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어제 확인했을 땐 없었다. 분명히.
나는 출석부를 들고 손을 떨었다. 이건 내가 쓴 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하지만 누가 믿어줄까?
수업을 마치고, 나는 칠판을 지웠다. 교실을 정리했다. 창문을 잠갔다.
교무실로 돌아와 열쇠를 책상 서랍에 넣으려다 멈췄다.
열쇠에 분필 가루가 묻어 있었다.
하얀 분필 가루. 내 손에도 묻어 있었다. 언제 묻었지? 칠판을 지울 때? 아니면.
나는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내 옷깃에 분필 가루가 묻어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도. 마치 칠판에 기댄 것처럼.
하지만 나는 오늘 칠판에 기대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원룸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을 켰다. 인터넷에 '김유진 교사 실종'을 검색했다.
기사가 몇 개 나왔다. 15년 전 3월. 젊은 여교사 실종. 단서 없음. 미제 사건.
마지막 목격은 3월 23일 저녁, 학교 근처 편의점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끄고 눈을 감았다.
잠들기 직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3월 23일이다.
토요일 새벽.
눈을 떴다.
시계를 봤다. 새벽 3시.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원룸이었다. 안전했다.
그런데 손에 뭔가 쥐어져 있었다.
열쇠였다.
교무실 열쇠 꾸러미.
나는 비명을 삼켰다. 어제 분명 학교 책상 서랍에 넣었다. 어떻게 내 손에?
손을 보니 분필 가루가 묻어 있었다.
옷을 보니 외출복이었다. 잠옷이 아니었다.
신발을 보니 운동화가 신겨져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켰다.
위치 기록을 확인했다.
새벽 2시 30분. 학교.
나는 학교에 갔다 온 것이다.
기억이 없다.
나는 차를 몰고 학교로 달려갔다.
어두운 학교. 정문은 잠겨 있었다. 하지만 교무실 뒷문은 열려 있었다.
내가 열쇠로 연 것이다. 기억은 없지만.
6학년 교실로 뛰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숨이 멎었다.
칠판에 적혀 있었다.
'3월 23일 토요일'
내 필체로.
방금 쓴 것처럼 선명하게.
나는 칠판 앞에 섰다. 분필이 교탁 위에 놓여 있었다. 내가 쓴 것이다. 기억은 없지만.
교실을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나뿐이었다.
그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복도에서.
나는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발소리는 계속 들렸다.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교실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 손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이 저절로 교탁으로 향했다. 출석부를 펼쳤다. 펜을 들었다.
출석부에 뭔가 쓰기 시작했다.
'3월 24일 일요일'
내가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쓰는 게 아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펜을 던졌다.
교실을 뛰쳐나갔다. 복도를 달렸다. 교문까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학교를 벗어났다.
원룸으로 돌아와 문을 잠갔다. 불을 켰다. 핸드폰을 켰다.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 뭐라고 말하지? 내가 무의식중에 학교에 가서 칠판에 날짜를 쓴다고?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을 보면 분필 가루가 묻어 있고, 열쇠는 내 주머니에 있고, 위치 기록은 학교를 가리키고 있다.
나는 침대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15년 전 김유진 선생님도 이랬을까?
밤마다 학교에 가서 칠판에 날짜를 쓰고, 기억하지 못하고.
그리고 3월 23일 밤, 사라진 것일까?
나는 시계를 봤다.
새벽 4시.
아직 3월 23일이다.
그날 낮, 나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문을 잠갔다. 체인까지 걸었다. 열쇠를 서랍 깊숙이 넣었다.
절대 학교에 가지 않을 것이다.
저녁이 되었다. 해가 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지 않았다. 잠들면 안 된다. 잠들면 또 학교에 갈 것 같았다.
자정이 지났다.
3월 24일이 되었다.
나는 안도했다. 이제 괜찮다. 3월 23일이 지나갔다.
새벽 2시.
졸음이 몰려왔다. 버틸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교실이었다.
6학년 교실.
나는 칠판 앞에 서 있었다. 손에 분필이 쥐어져 있었다.
칠판에는 이미 적혀 있었다.
'3월 24일 일요일'
내가 쓴 것이다.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제 알겠어?"
나는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계속 들렸다. 내 목소리였다.
"넌 이제 나야."
칠판을 다시 봤다.
글씨가 변하고 있었다. 내 필체에서 다른 필체로. 김유진의 필체로.
"15년 전 나도 그랬어. 어느 날부터 칠판에 날짜가 적혀 있었지. 내 필체로. 그리고 나는 여기 남았어."
나는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분필을 들었다. 칠판에 날짜를 적기 시작했다.
'3월 25일 월요일'
"이제 네 차례야. 매일 밤 여기 와서 날짜를 써.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나는 교실을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내 것이 아니었다.
월요일 아침.
교감 선생님이 6학년 교실 문을 열었다.
칠판에 적혀 있었다.
'3월 25일 월요일'
교감 선생님은 한숨을 쉬었다.
"또 시작이구나."
교무실로 돌아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교육청인가요? 6학년 담임이 출근을 안 했습니다. 네, 새로 오신 선생님이요. 연락이 안 되네요."
그날 오후, 경찰이 왔다.
내 원룸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체인까지 걸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없었다.
침대 위에 열쇠 꾸러미만 놓여 있었다.
그 뒤로 6학년 교실 칠판에는 매일 날짜가 적혀 있다.
새 담임이 올 때마다.
필체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두 담임 선생님의 글씨다.
나는 지금도 거기 있다.
매일 밤 학교에 가서 칠판에 날짜를 쓴다.
기억은 없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칠판에 적혀 있다.
오늘도.
내일도.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