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구
아파트 관리비가 또 올랐다는 공지를 보고 나서, 나는 주방 싱크대를 닦기 시작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뭔가 하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덜 불안했다.
스펀지로 싱크대를 문지르다가 배수구 덮개를 열었다. 청소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미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휴지로 한 번 닦아내고, 다시 덮개를 닫으려는데.
배수구에서 물이 거꾸로 올라왔다.
붉은 물이었다.
천천히, 중력을 거스르듯 솟아 올랐다. 마치 누군가 아래에서 밀어 올리는 것처럼. 물은 배수구 입구에서 멈췄다. 그리고 나를 향해 고였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어떻게 나를 바라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분명 나를 보고 있었다. 수면이 렌즈처럼 일렁이면서, 내 얼굴을 비추는 동시에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물은 그대로 있었다. 흘러내리지도, 더 올라오지도 않았다. 그저 배수구 입구에 고여서, 붉게 떨리고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배수구에서 물이 역류하는데요."
"몇 호시죠?"
"1407호요."
타자 치는 소리가 들렸다.
"1407호... 아, 네. 확인됐습니다."
"확인됐다니요?"
"배수 점검 대상 세대시네요. 곧 담당자가 올라갈 겁니다."
"아니, 지금 물이 거꾸로—"
"네, 알고 있습니다. 대상 세대니까요."
전화가 끊겼다.
나는 다시 싱크대를 봤다. 붉은 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고여 있었다. 이제는 표면에 작은 기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래에서 무언가 숨을 쉬는 것처럼.
초인종이 울렸다.
빨랐다. 너무 빨랐다. 관리사무소는 15층인데, 전화 끊은 지 1분도 안 됐다.
문을 열자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왼쪽 가슴에 '배수관리팀'이라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1407호 맞으시죠?"
"네, 그런데—"
"들어가겠습니다."
남자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현관을 지나 주방으로 걸어갔다. 나는 황급히 뒤따라갔다.
남자는 싱크대 앞에 멈춰 섰다. 붉은 물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작은 수첩을 꺼내 뭔가 적었다.
"이거 뭐예요? 왜 물이 이렇게—"
"배수 점검입니다."
"점검이요? 이게 점검이라고요?"
남자는 나를 쳐다봤다. 표정이 없었다.
"배수구 사용 패턴 분석 중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사용 패턴이요? 대체 무슨—"
"14층 라인 전체가 점검 대상입니다. 이상 배수 감지됐거든요."
남자는 수첩을 덮고 배수구를 다시 봤다. 붉은 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장갑을 끼더니 손가락을 물속에 넣었다.
"하지 마세요!"
내가 소리쳤지만 늦었다. 남자의 손가락이 물에 잠겼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손가락을 천천히 휘저었다. 물이 일렁였다.
"정상입니다."
"정상이라니요? 저게 어떻게 정상이에요?"
남자는 손을 빼고 장갑을 벗었다. 장갑에 붉은 물이 묻어 있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배수구 역류는 점검 과정의 일부입니다. 2주 정도 지속될 예정이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2주요?"
"네. 그 동안 배수구 사용을 자제해 주시고, 물이 올라와 있어도 건드리지 마세요."
"건드리지 말라니, 그럼 설거지는 어떻게 해요?"
"화장실 세면대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남자는 수첩에 뭔가 또 적더니 나를 봤다.
"혹시 최근에 배수구에 무언가 버리신 적 있으세요?"
"아뇨, 없는데요."
"음식물은요?"
"음식물 쓰레기는 따로 버리는데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배수구는 공동 시설입니다. 개인의 부주의가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저는 아무것도 안 버렸다니까요."
"그럼 다행이네요."
남자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나는 따라가며 물었다.
"근데 왜 물이 붉어요?"
남자는 신발을 신으며 대답했다.
"배수관 녹입니다. 노후화된 거죠."
"녹이 저렇게 올라와요?"
"압력 차이 때문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문이 닫혔다.
나는 다시 주방으로 갔다. 붉은 물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제 기포가 더 많아졌다. 마치 끓고 있는 것처럼.
그날 밤, 나는 배수구 덮개를 닫고 그 위에 무거운 냄비를 올려뒀다. 별로 의미는 없었지만, 그래야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냄비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배수구 덮개는 열려 있었고, 붉은 물은 싱크대 가장자리까지 차올라 있었다. 넘치기 직전이었다.
나는 관리사무소에 다시 전화했다.
"물이 계속 올라오고 있어요. 이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점검 중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점검이 이런 식으로 돼요? 집 안이 물바다 될 것 같은데요!"
"넘치지 않습니다."
"어떻게 알아요?"
"지금까지 넘친 적 없으니까요."
"지금까지요?"
"네. 점검 대상 세대 중에서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복도로 나갔다. 옆집 1406호 초인종을 눌렀다. 30대로 보이는 여자가 문을 열었다.
"죄송한데요, 혹시 배수구에서 물 역류하는 거 겪으셨어요?"
여자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14층 전체가 점검 대상이라고 들었는데요."
"저희는 아무 문제 없어요."
"그럼 1408호는요?"
여자는 표정이 굳었다.
"1408호는... 비어 있어요."
"비어 있다고요?"
"네. 한 달 전에 이사 갔어요."
여자는 문을 닫았다.
나는 1408호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어두웠다. 하지만 뭔가 냄새가 났다. 곰팡이 같기도 하고, 쇠 같기도 한.
복도 끝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직원이었다. 아까 그 배수관리팀 남자.
남자는 수첩에 뭔가 적고 있었다. 나를 보면서.
나는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부터 물은 매일 조금씩 더 올라왔다. 싱크대를 넘어 주방 바닥까지 번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상은 퍼지지 않았다. 정확히 주방 타일 경계선에서 멈췄다.
나는 화장실 세면대로 설거지를 했다. 양치도 거기서 했다. 주방은 아예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밤마다 소리가 들렸다.
철벅.
철벅.
물이 움직이는 소리.
어느 날 밤, 참다못해 주방으로 갔다.
붉은 물 위에 뭔가 떠 있었다.
머리카락이었다.
긴 머리카락 다발이 물 위에 떠서, 천천히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배수구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비명을 참았다. 대신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증거가 필요했다.
플래시가 터졌다.
그 순간, 머리카락이 일제히 내 쪽을 향했다.
움직였다. 머리카락이 스스로 움직였다. 물 위에서 꿈틀거리며 나를 향해 뻗어 나왔다.
나는 뒤로 물러나 문을 닫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다음 날, 나는 짐을 쌌다. 이사를 가기로 했다. 2주고 뭐고, 더는 못 참겠다.
관리사무소에 해지 통보를 하러 갔다.
"이사 가시려고요?"
"네. 당장 나가고 싶어요."
직원은 컴퓨터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점검 기간 중에는 전출이 제한됩니다."
"뭐라고요?"
"계약서 특약 사항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공동 시설 점검 시 임차인은 협조 의무가 있으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1407호님, 배수구에 뭔가 버리셨죠?"
나는 멈췄다.
직원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그 배수관리팀 남자와 똑같은 표정으로.
"아무것도 안 버렸어요."
"CCTV에 다 나와 있습니다."
"CCTV요? 배수구에 CCTV가 어떻게—"
"배수구는 감시 대상입니다. 모든 세대의 배수 패턴이 기록되고 있어요."
직원은 모니터를 돌려 나에게 보여줬다.
화면에는 여러 개의 창이 떠 있었다. 각 창마다 다른 집 배수구가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본 각도로, 실시간으로.
내 집 배수구도 있었다.
붉은 물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안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뭘 버리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점검이 끝납니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1408호도 그렇게 말했어요."
나는 숨이 막혔다.
"1408호가... 뭐라고요?"
직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모니터의 한 창을 가리켰다.
1408호 배수구였다.
거기도 붉은 물이 가득했다. 하지만 내 집과 달리, 물 위에 뭔가 떠 있었다.
얼굴이었다.
사람 얼굴이 물 위에 떠서, 천장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협조 안 하시면 1408호처럼 되십니다."
나는 비틀거리며 관리사무소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나는 모든 집 문 앞에 멈춰 섰다. 귀를 기울였다.
철벅.
철벅.
모든 집에서 물 소리가 들렸다.
14층 전체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주방 물이 거실까지 번져 있었다. 약속과 다르게. 이제 막을 수 없었다.
물 한가운데에 그것이 서 있었다.
사람 형상이었다. 붉은 물로 이루어진. 천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없었다. 하지만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문을 잠그고 베란다로 달려갔다. 14층이었다.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1층 배수구 뚜껑들이 모두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붉은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파트 전체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관리사무소였다.
"1407호님, 배수구에 뭘 버리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아무것도 안 버렸다니까요!"
"그럼 왜 물이 올라오는 거죠?"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알아야 합니다. 본인 배수구니까요."
전화가 끊겼다.
뒤에서 철벅 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베란다 문을 잠갔다. 유리창 너머로 거실이 보였다.
붉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천장까지.
그 안에서 여러 개의 형상이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배수구에서 계속 물이 솟아올랐다.
지금도 나는 이 아파트에 산다. 1407호에.
물은 매일 밤 올라온다. 아침이 되면 사라진다. 하지만 조금씩 더 오래 남는다.
관리사무소는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웃들도 더 이상 문을 열지 않는다.
복도에는 항상 물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오늘도, 배수구에서 붉은 물이 솟아올라 나를 바라본다.
무엇을 버렸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나 자신도 모르니까.
하지만 물은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곧, 나도 알게 될 것이다.
물속에 잠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