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번호 2847
새 아파트로 이사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나는 침대 밑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플라스틱 인형이었다.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가고, 머리카락은 절반쯤 뽑혀 있었다. 얼굴 한쪽이 녹아내린 듯 일그러져 있었다. 아마 전 입주자의 아이가 두고 간 것 같았다. 버리려다가, 문득 귀찮아서 그냥 책상 구석에 세워뒀다.
그날 밤 자정, 나는 속삭임에 잠에서 깼다.
"...지훈 씨..."
희미했다. 환청인가 싶었다. 하지만 분명 내 이름이었다.
"지훈 씨..."
다시 들렸다. 이번엔 조금 더 가까이에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책상 위의 인형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딸깍. 딸깍. 플라스틱 눈꺼풀이 기계적으로 열렸다 닫혔다 반복했다.
나는 얼어붙었다. 손전등을 켜서 인형을 비췄다. 움직임이 멈췄다. 그저 낡은 인형일 뿐이었다. 배터리 칸을 확인했다. 비어 있었다. 전원이 들어갈 구조조차 아니었다.
착각이라고, 피곤해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인형을 서랍 안에 넣고 문을 닫았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데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
발신자: 서울중앙의료원
"환자 번호 2847 지훈 님, 정기 검진 일정을 확인해주세요."
나는 그 병원에 간 적이 없었다. 스팸이려니 했다. 삭제했다.
그런데 퇴근길 지하철에서 또 문자가 왔다.
발신자: 서울중앙의료원
"2847번 환자님, 검체 채취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검체 채취? 무슨 소리지?
나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만 길게 울리다가 끊겼다. 다시 걸었다. 이번엔 자동응답기였다.
"...고객님의 전화는 현재 연결이 불가능합니다..."
이상했다. 병원 번호인데 왜 연결이 안 되지?
그날 밤, 자정.
"지훈 씨..."
또 그 목소리였다. 나는 이번엔 바로 불을 켰다. 서랍이 조금 열려 있었다. 인형이 틈 사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딸깍. 딸깍.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서랍을 확 열었다. 인형을 집어 들었다. 플라스틱 몸체는 차가웠다. 눈알 뒤쪽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구멍뿐이었다.
그런데 그 구멍 너머로 뭔가 반짝였다.
작은 렌즈였다.
카메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인형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플라스틱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머리가 반쯤 갈라졌다. 그 안에서 작은 칩과 배선이 드러났다.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서울중앙의료원
"환자 2847, 검체 손상이 확인되었습니다. 재수거 절차를 진행합니다."
검체? 나를 검체라고?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같은 번호에서.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문자는 계속 왔다.
"수거반 출동"
"현 위치 파악 완료"
"도착 예정 시각: 12:47"
시계를 봤다. 12:43.
나는 현관으로 뛰어갔다. 문을 잠갔다. 체인까지 걸었다. 하지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 규칙적이고 무거운 발걸음.
내 집 앞에서 멈췄다.
초인종이 울렸다.
"환자 2847, 문을 열어주십시오."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사람 같지 않았다.
"잘못 찾아오신 겁니다. 저는 환자가 아닙니다."
"환자 2847, 지훈. 동의서 서명 날짜: 2024년 11월 3일."
11월 3일. 이사 온 날이었다.
"저는 아무것도 서명한 적 없어요!"
"임대차 계약서 제9조 부속조항. '입주자는 의료 연구 목적의 생체 정보 수집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됨.'"
나는 계약서를 다시 꺼내 봤다. 정말로 있었다. 작은 글씨로, 맨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
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뭔가 기계를 설치하는 소리. 드릴 소리.
"강제 수거 절차를 시작합니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거실 한가운데로. 깨진 인형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렌즈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딸깍. 딸깍.
인형의 눈이 다시 깜박이기 시작했다.
문이 열렸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났다.
나는 여전히 이 아파트에 산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잠을 잔다. 모든 것이 정상이다.
단 하나, 매일 밤 자정이 되면 새 인형이 배달된다는 것만 빼고.
어제는 토끼 인형이었다. 오늘은 곰 인형이다. 모두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 있고, 눈 뒤에는 렌즈가 박혀 있다.
그리고 매일 밤 자정, 그것들은 내 이름을 속삭이며 눈을 깜박인다.
"지훈 씨..."
딸깍. 딸깍.
휴대폰 문자함에는 매일 같은 메시지가 쌓인다.
발신자: 서울중앙의료원
"환자 2847, 오늘의 수면 패턴이 기록되었습니다."
"환자 2847, 심박수 데이터 전송 완료."
"환자 2847, 내일도 정상적으로 생활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사를 가려고 했다. 하지만 계약 해지 조항을 읽었을 때, 마지막 줄을 봤다.
"중도 해지 시, 연구 대상자는 의료원으로 직접 이송됩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 있다.
매일 밤, 새로운 인형과 함께.
그리고 오늘도, 자정이 되면 그것들은 내 이름을 부를 것이다.
딸깍. 딸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