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ror
2026년 2월 11일 · 15 min read

젖은 발자국

젖은 발자국

젖은 발자국

나는 402호에 입주한 지 석 달째다.

월세 45만 원. 보증금 500만 원. 서울 외곽 반지하도 이 가격에 못 구하는 시대에, 이 아파트는 기적 같은 조건이었다. 단지 내 게시판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달려왔을 때, 부녀회장이라는 50대 여성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규칙 잘 지킬 수 있어요?"

"네, 당연하죠."

"여기는 좀 특별해요. 주민들이 서로 많이 신경 써주거든요."

그때는 좋은 의미로 들렸다.


첫날 밤, 벽장을 열었을 때 그 신발을 발견했다.

낡은 검은색 단화. 뒤축이 닳아 한쪽으로 기울어진, 누군가 오래 신었던 것 같은 신발. 이전 세입자가 두고 간 거겠지 싶어 그냥 뒀다. 버리기엔 애매하고, 신기엔 너무 낡았다.

그날 밤 2시쯤, 발소리에 잠이 깼다.

찰각, 찰각.

젖은 신발이 바닥을 디디는 소리. 현관 쪽에서 들려왔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천천히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아무도 없었다. 현관문은 잠겨 있었다. 바닥은 말랐다.

환청이겠지. 피곤해서.


사흘 후, 같은 시각에 또 들렸다.

찰각, 찰각.

이번엔 확실했다. 현관에서 벽장 쪽으로 이동하는 소리. 벽장 문이 스르륵 열리는 기척.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였다.

아침에 벽장을 확인했다. 신발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위치가 달랐다. 어제는 왼쪽 구석에 있었는데, 오늘은 문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 밤새 신고 다니다가 제자리에 둔 것처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을 뻗었다. 신발이 축축했다.


"402호 사시죠?"

복도에서 옆집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401호 거주자. 얼굴은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목소리는 익숙했다. 벽이 얇아서 전화 통화 소리가 다 들렸다.

"네, 안녕하세요."

"밤에 좀 조용히 해주실 수 있어요? 새벽에 돌아다니시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어요."

"...제가요?"

"네. 매일 새벽 2시쯤이요. 신발 신고 왔다갔다하시잖아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주머니는 짜증 섞인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돌아갔다.

그날 밤, 나는 벽장 문을 테이프로 봉인했다.


새벽 2시.

찰각, 찰각.

테이프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벽장이 열렸다. 나는 이불 속에서 떨고 있었다. 발소리가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복도로 나가는 발소리.

그리고 노크.

똑, 똑, 똑.

401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의 비명. "또 왔어! 또 왔다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내가 아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아침이 되자 복도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402호 입주자는 오늘 저녁 7시 부녀회실로 출석하시기 바랍니다."


부녀회실은 1층 관리사무소 옆 작은 방이었다. 들어서자 여섯 명의 여성이 나를 둘러쌌다. 부녀회장이 서류를 펼쳤다.

"민원이 다섯 건 들어왔어요. 새벽 소음, 복도 배회, 이웃 문 두드리기."

"저는 안 했어요. 자고 있었다고요."

"CCTV 확인했어요."

회장이 태블릿을 돌렸다. 화면에는 복도가 보였다. 새벽 2시 3분. 402호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왔다. 검은 단화를 신은 사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각도가 애매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401호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다시 402호로 들어갔다.

"이게 저라는 증거가 어디 있어요? 얼굴도 안 나오잖아요."

"402호에서 나왔으니 당신이죠. 열쇠는 당신만 가지고 있고."

"누가 복제했을 수도—"

"우리 아파트는 그런 일 없어요." 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는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에요. 당신이 적응 못 하면 나가야죠."

나는 손이 떨렸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다시는 안 일어날 거예요."

회장이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지만 다음엔 없어요."


그날 밤, 나는 벽장 문을 못으로 박아버렸다. 신발을 꺼내 쓰레기봉투에 넣고 묶었다. 현관문에 체인을 걸고 의자를 받쳐뒀다.

새벽 2시.

쿵, 쿵, 쿵.

벽장 안에서 무언가 문을 두드렸다. 못이 삐걱거렸다. 나는 귀를 막았다.

그때 복도에서 비명이 들렸다.

"또야! 402호 또 나왔어!"

나는 현관으로 달려갔다. 체인은 그대로였다. 의자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문구멍으로 밖을 보니, 복도에 젖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402호에서 시작해서 401호까지 이어진 발자국.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나 안 나갔어! 나 여기 있다고!"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다음날 퇴거 통보를 받았다.

"일주일 안에 나가세요. 보증금은 피해 보상으로 차감됩니다."

나는 경찰에 신고했다. "누가 저를 모함하고 있어요. 제가 아니라고요."

경찰은 CCTV를 확인하고 돌아갔다. "증거가 명확한데요. 402호에서 나온 게 맞잖아요."

"열쇠 복제를 조사해주세요. 신발을 감정해주세요."

"신발이요?"

나는 쓰레기봉투를 가리켰다. 경찰이 열어봤다.

봉투는 비어 있었다.


마지막 날 밤.

짐을 다 쌌다. 벽장은 여전히 못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나는 못을 뽑지 않기로 했다. 다음 세입자가 알아서 하겠지.

새벽 2시.

찰각, 찰각.

이번엔 내 방에서 들렸다. 침대 밑에서. 나는 숨을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침대 밑을 봤다.

검은 단화가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신발 안에서 무언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지금 나는 다른 동네 고시원에 산다.

보증금을 못 돌려받아서 월세 20만 원짜리 방이다. 창문도 없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어젯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찰각, 찰각.

내 방 앞에서 멈췄다.

문 밑으로 쪽지가 들어왔다.

"새 주소 잘 받았습니다. - 402호 부녀회"

그리고 오늘 아침,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젖은 검은 단화 한 켤레.

이번엔 내 발 사이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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