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ror
2026년 2월 11일 · 15 min read

반복되는 페이지

반복되는 페이지

반복되는 페이지

나는 매일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왕복 두 시간.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항상 책을 들고 다닌다.

어제 중고서점에서 산 소설책이었다. 표지는 낡았지만 내용은 괜찮아 보였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다."

평범한 문장이었다. 나는 책장을 넘겼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다."

같은 문장이 다음 페이지에도 인쇄되어 있었다. 오탈자인가 싶어 다시 한 번 책장을 넘겼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다."

이상했다. 출판 실수일까. 나는 몇 장을 빠르게 넘겨봤다. 모든 페이지에 같은 문장만 반복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나는 책을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다시 그 책을 꺼냈다. 어젯밤 확인했을 때는 분명 모든 페이지가 똑같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펼쳐봤다.

첫 페이지.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다."

책장을 넘겼다.

"그는 문득 자신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장이 달랐다. 어제와 달랐다. 나는 안도하며 다음 장을 넘겼다.

"그는 문득 자신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같은 문장이었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몇 장을 더 넘겼다. 모든 페이지에 같은 문장. "그는 문득 자신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하철이 멈췄다. 내릴 역이었다. 나는 책을 덮고 회사로 향했다.


점심시간에 다시 책을 펼쳤다.

"그는 문득 자신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새로운 문장이었다. 나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또 반복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책의 내용이 계속 바뀌는 건가?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건가?

동료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얼굴이 안 좋은데."

"아니, 괜찮아."

나는 책을 서랍에 넣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다시 책을 꺼냈다. 이번에는 아예 중간 부분을 펼쳤다.

"그는 다음 페이지를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손이 떨렸다. 나는 책장을 넘겼다.

"그는 다음 페이지를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숨이 막혔다. 나는 미친 듯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빠르게, 더 빠르게.

모든 페이지에 같은 문장.

"그는 다음 페이지를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는 다음 페이지를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는 다음 페이지를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나는 책을 덮었다. 가방에 넣었다. 다시는 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다음 페이지를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잠들기 전, 나는 다시 책을 꺼냈다. 마지막 확인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그는 이 책을 읽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책장을 덮으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저절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첫 페이지였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다."

아니. 이건 처음 페이지가 아니었다. 나는 분명 마지막 페이지를 봤다. 하지만 책은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책장을 넘겼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다."

또 넘겼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다."

멈출 수 없었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기고, 계속 넘겼다.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고, 끊임없이 읽었다.

시계를 봤다. 새벽 두 시였다.

손은 여전히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회사에 지각했다. 어젯밤 잠을 거의 못 잤다.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겨우 책을 놓을 수 있었다.

책은 가방 속에 있다. 만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되자 손이 저절로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책을 꺼냈다.

펼쳤다.

"그는 이제 다른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나는 급히 컴퓨터로 뉴스 기사를 열었다. 글자가 보였다. 하지만 읽히지 않았다. 눈은 글자를 따라가지만, 의미가 들어오지 않았다.

동료가 보낸 메시지를 열었다.

"회의 자료 확인했어?"

글자는 보이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외국어를 보는 것 같았다.

다시 그 책을 펼쳤다.

"그는 이제 다른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문장만 명확하게 읽혔다. 완벽하게 이해되었다.

나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는 이제 다른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더 이상 메일을 읽을 수 없다. 보고서를 작성할 수 없다. 메뉴판을 읽을 수 없다.

오직 이 책의 문장만 읽을 수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문장이 바뀐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에는 항상 방금 읽은 문장이 반복된다.

"그는 이제 이 반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제 이 반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제 이 반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에서 경고를 받았다. 업무 태만이라고. 나는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하려고 해도, 쓰는 글이 읽히지 않았다. 내가 쓴 글조차 내가 읽을 수 없었다.


오늘.

나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 책을 펼쳤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다."

첫 문장으로 돌아왔다.

나는 책장을 넘긴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다."

또 넘긴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다."

지하철이 멈춘다. 내 역이다. 하지만 나는 일어나지 않는다.

손이 계속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문이 닫힌다. 지하철이 다시 출발한다.

나는 여전히 앉아서 같은 문장을 읽고 있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갔다."

내일도.

모레도.

나는 이 지하철에 타서 이 책을 읽을 것이다.

같은 문장을.

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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