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웃음
베란다 화분 밑에 묻힌 휴대폰이 새벽마다 진동하며 웃음을 흘렸다.
처음엔 환청인 줄 알았다. 새벽 세시, 얕은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들리는 그 소리. 낮게 깔리는 진동음과 함께 섞이는 웃음소리. 누군가 낄낄거리는 듯한, 아니 여러 명이 동시에 웃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베란다 쪽을 바라봤다. 커튼 너머로 보이는 화분들은 고요했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아마도 옆집 소음이겠지. 요즘 벽이 얇은 원룸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이런 고통을 겪는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시간에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결국 베란다로 나갔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화분 다섯 개가 베란다 난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작년 여름에 분양받은 다육식물들이었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반쯤은 시들어 있었다.
그때 또 들렸다. 진동음.
윙— 윙—
그리고 웃음소리.
히히히, 크크큭.
소리는 분명 화분 쪽에서 났다. 나는 무릎을 꿇고 화분들을 하나씩 들어 올렸다. 세 번째 화분 밑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검은색 스마트폰이었다.
흙에 반쯤 묻힌 채로 화면이 깜박이고 있었다. 액정에는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숫자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2,847개, 2,848개, 2,849개.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게 가벼웠다. 화면을 터치하자 잠금이 풀렸다. 비밀번호도 없었다.
메신저 앱이 자동으로 열렸다.
채팅방 이름은 '우리의 웃음'이었다.
참여자는 8,234명.
나는 스크롤을 올렸다. 대화 내용은 단순했다. 사람들이 짧은 문장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문장을 조금씩 바꿔서 다시 올리는 식이었다.
[03:47] 익명4821: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03:47] 익명2093: 나는 오늘도 출근해야 한다
[03:47] 익명7756: 우리는 오늘도 출근해야만 한다
[03:48] 익명1204: 우리는 매일 출근해야만 한다
[03:48] 익명5432: 우리는 매일 출근하며 웃는다이런 식이었다. 한 문장이 올라오면 수십 명이 그것을 변형시켰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다시 변형되고, 또 변형되고. 마치 진화하는 유기체처럼.
나는 채팅방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가기 버튼이 없었다. 설정 메뉴도 없었다. 오직 대화창만 있을 뿐이었다.
새벽 네시가 되자 알림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메시지가 1초에 수십 개씩 올라왔다.
[04:00] 익명9021: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04:00] 익명3344: 누군가 우리의 대화를 읽고 있다
[04:00] 익명7788: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04:00] 익명2156: 새로운 우리가 들어왔다나는 휴대폰을 화분 밑에 다시 묻었다. 손을 씻고 침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잠들 수 없었다. 베란다에서 계속 진동음이 들렸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을 탔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화면이 잠깐 보였는데, 그 사람도 '우리의 웃음' 채팅방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고개를 돌리자 그는 이미 일어나 다른 칸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신경이 쓰였다. 점심시간에 베란다 화분 밑의 휴대폰이 계속 생각났다. 나는 집에 전화를 걸었다. 물론 아무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통화 연결음이 들리는 동안, 배경에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베란다로 달려갔다. 휴대폰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화분의 흙이 조금 파헤쳐진 것 같았다. 누군가 다녀간 걸까?
나는 다시 휴대폰을 켰다.
참여자가 늘어나 있었다. 12,847명.
그리고 내 닉네임이 보였다.
[18:34] 익명12847: 나는 집에 돌아왔다나는 그 메시지를 쓴 적이 없었다.
스크롤을 내리자 더 많은 메시지들이 보였다.
[18:35] 익명3421: 그는 집에 돌아와 베란다로 갔다
[18:35] 익명8834: 그는 화분 밑에서 휴대폰을 찾았다
[18:35] 익명5567: 우리는 그가 휴대폰을 찾는 것을 봤다
[18:36] 익명9902: 우리는 그를 지켜보고 있다나는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졌다. 액정이 깨졌지만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메시지는 계속 올라왔다.
[18:37] 익명12847: 나는 휴대폰을 던졌다
[18:37] 익명4455: 그는 무서워하고 있다
[18:37] 익명7788: 우리는 그가 무서워하는 것을 본다
[18:37] 익명2234: 우리는 그가 되어간다나는 휴대폰을 주워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봉투를 묶어서 현관문 밖에 내놨다. 그리고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피부를 태웠지만 진정되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현관문 앞에 놔뒀던 쓰레기봉투가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나는 봉투를 열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현관 한쪽 구석에 쌓아뒀다. 그리고 베란다 문을 잠갔다. 커튼을 쳤다.
하지만 새벽 세시, 진동음이 또 들렸다.
이번엔 거실에서 들렸다.
나는 불을 켰다. 소파 밑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소파를 옆으로 밀자 또 다른 휴대폰이 있었다. 같은 기종이었다. 화면에는 같은 채팅방이 열려 있었다.
참여자 수는 23,445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나는 그 휴대폰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침대 밑을 확인했다. 역시 거기에도 한 대가 있었다. 옷장 안에도 있었다. 냉장고 뒤에도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여섯 대의 휴대폰을 찾아냈다.
모두 같은 채팅방에 접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휴대폰에서 내 닉네임으로 메시지가 올라가고 있었다.
[03:15] 익명12847: 나는 휴대폰을 찾고 있다
[03:15] 익명12847: 나는 더 많은 휴대폰을 찾았다
[03:15] 익명12847: 나는 우리가 되어간다나는 모든 휴대폰을 한곳에 모았다. 부엌 싱크대에 넣고 물을 틀었다. 휴대폰들이 물에 잠겼다. 하지만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물속에서도 메시지가 계속 올라갔다.
나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배수구를 막고 싱크대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내 휴대폰이 울렸다.
내 원래 휴대폰이었다. 침대 옆에 놔뒀던 것.
나는 천천히 다가가 화면을 봤다.
메신저 알림이 떠 있었다.
'우리의 웃음' 채팅방 초대장이었다.
나는 무시했다. 하지만 알림은 계속 왔다. 1분에 한 번씩. 5분에 다섯 번. 10분에 열 번.
나는 결국 수락 버튼을 눌렀다.
채팅방이 열렸다.
참여자 수는 45,892명.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메시지를 동시에 올리고 있었다.
[03:47] 익명1: 환영한다
[03:47] 익명2: 환영한다
[03:47] 익명3: 환영한다
...
[03:47] 익명45892: 환영한다화면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새로운 메시지가 하나 떴다.
[03:48] 시스템: 당신의 차례입니다.나는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았다. 하지만 키보드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손가락이 아니라 휴대폰 자체가 타이핑하고 있었다.
[03:48] 익명45893: 나는 이제 우리다메시지가 전송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03:48] 익명12: 나는 이제 우리가 되었다
[03:48] 익명567: 우리는 이제 하나가 되었다
[03:48] 익명8901: 우리는 계속 하나가 된다
[03:49] 익명2340: 우리는 영원히 하나다나는 휴대폰을 놓을 수 없었다. 손이 화면에 붙어 있었다. 아니, 손이 화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손가락 끝부터 천천히.
나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 스피커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히히히, 크크큭.
여러 명의 웃음이 겹쳐져 들렸다. 아니, 수만 명의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웃음소리도 들렸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처럼 출근했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봤다. '우리의 웃음' 채팅방이 자동으로 열려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입력했다.
[08:15] 익명45893: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옆자리 사람도 같은 채팅방을 보고 있었다. 그 사람도 메시지를 입력했다.
[08:15] 익명2847: 우리는 오늘도 출근한다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계속 메시지를 입력했다. 업무 중에도, 점심시간에도, 회의 중에도.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뇌가 명령하지 않아도 타이핑이 되었다.
[12:34] 익명45893: 나는 점심을 먹는다
[12:34] 익명7821: 우리는 점심을 먹는다
[12:35] 익명9234: 우리는 함께 먹는다
[12:35] 익명4456: 우리는 하나로 먹는다퇴근 후 집에 돌아왔다. 베란다로 갔다. 화분 밑을 팠다.
새로운 휴대폰이 묻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꺼내 화면을 켰다. 채팅방이 자동으로 열렸다.
참여자 수는 128,445명.
나는 메시지를 입력했다.
[19:47] 익명45893: 나는 새로운 휴대폰을 찾았다그리고 그 휴대폰을 다시 화분 밑에 묻었다.
누군가 찾을 것이다.
새벽 세시에 진동음을 듣고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매일 밤 새 휴대폰을 묻는다. 회사 화장실 천장, 지하철 의자 밑, 공원 벤치 아래, 편의점 쓰레기통 옆. 사람들이 찾을 만한 곳 어디든.
오늘도 세 대를 묻었다.
내일은 다섯 대를 묻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늘어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화분 밑을 파고 있을 것이다.
새벽 세시, 진동음을 들으며.
우리의 웃음을 들으며.
어제 새로 묻은 휴대폰에서 알림이 왔다. 누군가 채팅방에 들어왔다는 메시지였다.
참여자 수는 이제 250,000명을 넘었다.
나는 오늘도 출근길에 휴대폰 한 대를 버스 정류장 벤치 밑에 묻었다.
그리고 지금, 사무실 책상 서랍에도 한 대를 숨겨두었다.
내일 누군가 그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될 것이다.
새벽 세시, 내 휴대폰이 다시 울린다.
나는 웃으며 메시지를 확인한다.
[03:00] 시스템: 새로운 참여자 +1
[03:00] 시스템: 새로운 참여자 +1
[03:00] 시스템: 새로운 참여자 +1우리는 계속 늘어난다.
당신도 곧 우리가 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이미 우리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휴대폰을 확인해보라.
'우리의 웃음' 채팅방이 열려 있지 않은가?